열왕기상

여로보암의 우상숭배

은혜바다로 2022. 5. 5. 10:02

열왕기상 12:25-33

 

염려나 두려움, 그릇된 욕망 등은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기 쉬운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그것이 커질수록 사람은 잘못 판단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기가 쉽습니다. 사람들의 죄와 실패는 여기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성경에, 북 이스라엘 왕이 된 여로보암이 염려와 두려움, 잘못된 욕망으로, 잘못된 판단과 일을 행하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로보암은 먼저 세겜을 수도로 정하고, 주변 부느엘에 성을 쌓았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다윗의 집을 다시 따르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특히 성전은 예루살렘에만 있었기에,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다녀올 때 르호보암 왕에게로 마음이 끌리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나라를 나누어서 자신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잊었습니다. 나라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어떻게 지켜야 할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의 산지에 있는 세겜 성을 도성으로 삼고, 얼마 동안 거기에서 살다가, 브누엘 성을 세우고, 그리로 도성을 옮겼다. 12:26 그런데 여로보암의 마음에, 잘못하면 왕국이 다시 다윗 가문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2:27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성전으로 제사를 드리려고 올라갔다가, 그들의 마음이 그들의 옛 주인인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게 되는 날이면, 그들이 자기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염려와 두려움으로 그는 잘못된 구상을 하고, 종교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하나는 벧엘에 세우고 하나는 단에 세웠습니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들이라 했습니다. 시내산에서 백성들이 아론과 함께 행했던 그 악을 다시 재현했습니다. 산당들도 지었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을 그리워하며 예루살렘에 가고자 하는 마음을 차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715일에 지키던 장막절을 815일로 바꾸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여로보암의 관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자기 편에 머물게 할 것인가에만 있었습니다, 그것이 염려되고 두려우니 하나님의 법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입니다.

 

왕상 12:28 왕은 궁리를 한 끝에, 금송아지 상 두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일은, 너희에게는 너무 번거로운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해 주신 신이 여기에 계신다." 12:29 그리고 그는 금송아지 상 두 개를, 하나는 베델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12:30 그런데 이 일은 이스라엘 안에서 죄가 되었다. 백성들은 저 멀리 단까지 가서 거기에 있는 그 한 송아지를 섬겼다. 12:31 여로보암은 또 여러 높은 곳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일반 백성 가운데서, 제사장을 임명하여 세웠다. 12:32 여로보암은 유다에서 행하는 절기와 비슷하게 하여, 여덟째 달 보름날을 절기로 정하고, 베델에다 세운 제단에서, 그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만든 베델의 산당에서 제사를 집행할 제사장들도 임명하였다. 12:33 왕은 자기 마음대로 정한 여덟째 달 보름날에, 베델에 세운 제단에서 제사를 드렸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지켜야 할 절기를 이렇게 제정하고, 자기도 그 제단에 분향을 하려고 올라갔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에 대한 징계로 이스라엘 10지파를 여로보암에게 나누어 주면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며 내 길로 행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라 그러나 이 일로 다윗의 집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않으리라(왕상 11:38). 여로보암은 그 하나님의 마음과 뜻,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그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을 자기 나라로 생각하고, 자기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우고 분향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너희를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송아지 형상의 하나님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었습니다. 이 일로 결국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길을 떠나고 멸망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대대로 다윗의 길과 대비되는 멸망의 길, 여로보암의 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염려와 근심, 두려움이 작용할 때,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내 욕망을 이루려고 하면, 염려와 두려움은 더욱 커집니다. 좋으신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려 할 때, 염려와 두려움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는 분처럼 믿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염려와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길을 벗어나지 않으며, 말씀을 따라 생명과 축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기도: 여로보암의 길로 가지 말고 다윗의 길로 가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