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빌닷의 두 번째 충고

은혜바다로 2023. 1. 25. 11:14

욥기 18:1-21

 

권면이나 충고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권면하는 사람은 화가 납니다. 그러면 점차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자신의 화를 권면에 실어 쏟아놓게 됩니다. 모두 죄인 된 인생들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오늘 성경에, 빌닷이 두 번째로 욥을 충고하는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빌닷은 자신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욥에게 화가 났습니다. 언제까지 말을 끝내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겠냐며 질책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보느냐고, 너는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다고 이 땅이 황무지가 되겠으며, 바위가 제자리에서 밀려나겠느냐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18: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18: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18: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18: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이어서 빌닷은 악인이 겪는 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습니다. 전형적인 인과응보론에 근거한 말이지만, 사실은 욥이 겪고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욥이 악을 행하여 벌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이었습니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해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라.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몸은 올무에 얽히도다.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가리라. 그의 힘은 기근으로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라.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라.

 

18: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18: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18: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18: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18: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8: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8: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계속해서 빌닷은 악인이 당할 형벌과 환난을 이어갔습니다. 욥이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고 설득하려는 것을 넘어, 욥이 그런 일을 더욱 당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느껴지게 됩니다. 악인이 의지하던 것은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 가리라.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라.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으리라.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가 놀라고, 동쪽에서 오는 자가 놀랄 것이라.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가 이러하리라.

 

18: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8: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18: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18: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빌닷의 말은 욥을 위로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욥에게 자기 화풀이를 하는 말이었습니다. 나아가 욥을 저주하는 말이었습니다. 왜 우리 말을 듣지 않느냐고 따지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게 재앙을 당하는 것은 죄가 있기 때문인데, 왜 빨리 회개하지 않고, 자신이 의롭다고 주장하느냐고 질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빌닷이 자기 신앙을 확증받고 싶은 욕망이기도 했습니다.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것을 믿고 있는데, 욥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또 얼마나 악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친구가 생사를 오가며 고통중에 있는데, 자기 사상, 자기 신앙을 검증받고 싶어 합니다. 자기 말을 납득시키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차단하고, 자신이 모든 것을 단정지어 버립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내 사상과 말로 굴복시키려 한 적은 없겠습니까? 자기를 위해주는 내 말을 안듣는다고 화를 낸 적은 없겠습니까? 죄인을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상대방을 생각한 적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도 빌닷과 같이 악을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이 억압하는 말이 아니라 살리는 말이 되고, 상대방의 길을 막는 말이 아니라 소망을 여는 말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 기도: 억압하는 말이 아니라 살리고 풀어주는 말을 하게 하옵소서